87년생 수컷의 인생저장소

우파 관점에서 보는 광주 5.18.



광주 5.18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좌우 이념 갈등의 끝판왕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해당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면 그 사람의 정치성향을 모두 알 수는 없더라도 대충은 알 수 있다. 해당 글은 우파와 중도층을 겨냥하고 작성하는 글이며 괜히 좌파들 이거보고 속터지지 말고 늦지 않았으니 뒤로가기 누르는걸 추천한다.


제발!

좌파들은 이거 보고 속 터지지 말고 그냥 나가주세요.

 

그리고 이야기 시작하기에 앞서 역사를 다양한 관점에서 보는게 잘못된건가? 


좌파들은 천안함 피격사건을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자작극이라느니 좌초라느니 별의 별 '합리적 의심' 다 하지 않나? 좌파는 되고 우파는 안돼? 뭐 내로남불이야? 그런거 아니지?


광주사태는 발생부터 마무리까지의 과정을 다음과 같이 각 시기별로 나눌 수 있다.


 1

 5. 18 이전

 전국의 혼란과 서울역 회군 

 2

 5. 18 ~ 5. 20 

 공수부대 진압 작전 기간 

 3

 5. 21

 광주 철수 작전 

 4

 5. 21 ~ 5. 26

 광주 봉쇄 기간 

 5

 5. 27

 광주 탈환 


1. 5.18이전 전국혼란과  서울역 회군


최규하 대통령은 선거에 의한 정권 이양을 약속한다. 이에 故김종필은 공화당을 기반으로 대권에 도전하고 있었고 김영삼은 신민당을 기반으로 대권에 도전하게 된다.


당시 김대중은 정당 기반을 잃은 상태라 앞서 말한 두 후보들 보다는 조금 힘들게 고군분투하며 대권에 도전하고 있었다. 이 당시 김대중 아들의 사조직이 큰 활동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곤 했었다.

 

김대중이 광주 사태 당시 광주 근처에도 가지 않았는데도 내란죄로 형을 받게 된 이유이다.


누구의 사주로 시작이 되었던 간에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산 되었고, 이런 상황 중 서울역 회군 사건이 일어나면서 시위의 열기는 점차 사그러 들고 있었다. 


서울역 회군 : 서울역 시위대가 버스를 탈환하여 전경대원들을 향해  무차별 돌진을 하는데  그로 인해 전경대원을 압사 당하자.  이건 아니다 싶었는지 다들 시위의 현장에서 물러나게 된 사건.


<바쁜 사람은 1분 15초 부터>


서울역 회군 사건을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시위가 사그러들기 시작했는데, 광주에서는 반대로 시위를 더 확장시키기 위한 계획이 수립 되고 있었다.


5.15일 횃불 집회에서 계엄령이 선포되면 대학생들은 곧바로 교정을 버리고 금남로에 집결하여 시위를 시작하기로 결의하게 된다. (당시 대학생들의 시위 방식은 교문에 집결 한 후 시내로 점차 진출하는 방식으로 정형화 되어 있었는데, 계엄령 당일 처음부터 시내로 집결하여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당시 금남로의 모습. 사진 출처: pub조선(http://pub.chosun.com/client/news/lst_column.asp?cate=C03)>


2. 5.18~21 공수부대 진압작전 기간


<사진 출처: https://brunch.co.kr/@resonancelaw/55>


먼저, 공수부대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가 다들 처음부터 광주 시내 진압 작전에 투입된 걸로 알고 있는데 그는 잘못된 사실이라고 한다. 

  

광주 시내는 향토 사단인 31사단, 그리고 지역 경찰의 작전지역이었고 그로 인해 투입된 공수부대의 작전지역은 전남대와 조선대 일대로 국한 되어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7여단의 2개대대(600여명)정도의 적은 인원이 두개의 대학에 분산배치된게 전부였다.


광주 사태 동안 투입된 총 공수부대는 7여단, 11여단, 3여단, 20사단인데 해당 부대들 전부가 광주로 동시에 투입된 것이 아니고 상황이 점점 악화 되어감에 따라 임기응변식으로 하루에 한개 여단씩 추가적으로 투입이 된 것이다.

  

19일 11여단 

20일 3여단 

21일 20사단


좌파들이 주장하는게 처음부터 공수부대의 투입목표가 광주 학살이었다면, 한번에 많은 투입으로 빠르게 작전을 마치면 되는데 이런식으로  점차 증가 시키며 투입을 했다고? 그들이 좋아하는 '합리적 의심'을 해볼 만함. 아니 맞잖아. 학살이 목적이었으면 한방에 우르르 가서 하면 되는걸 왜 점점 투입을 증가시켰을까?, 애초에 상식에 벗어나는 행동이 아닐까 싶다.


그럼 작전지역이 전남대/조선대였던 공수부대 7여단이 왜 광주시내로 작전지역을 확대했는지와 이후의 상황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사진 출처: https://jbcxfile.tistory.com/346>


5.15일 횃불 집회에서 결의한대로 5.18 시위대는 바로 금남로로 집결 후 과격한 시위를 시작하게 되는데 이미 광주시내는 불바다가 됐고, 조직화된 형태로 차량까지 운용하면는 모습을 보였다. 


이때 공수부대는 전남대/조선대에서 나오지도 않았는데 공수부대가 광주시민을 학살하러 왔다는 식의 유언비어까지 퍼지고 있었다.


결국 당시 광주경찰은 무력시위 진압을 홀로 막기에 버거움을 느끼고 전남대/조선대에 주둔한 공수부대에게 구원을 요청하게 된다. 요청을 받은 공수부대는 부랴부랴 금남로로 이동하여 진압작전을 시작한다. 이전에는 공수부대가 아직 시내로 나가지도 않았는데 이미 경상도군인이 전라도 시민들을 학살하러 왔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전해진다.


전경이 군인도 아니고 그냥 경찰일 뿐 아니야? 라고  무시할지더 모르지만 당시 전경들은 군기나 전투력을 따지고 보면 지금의 현역들보다 더 월등했다는 평을 받는다. 그런데도 시위대에게 무너져서 공수부대를 요청한 상황이었으니 시위가 얼마나 과격했는지에 대해서는 상상에 맞기도록 한다. 사실 나도 당시를 겪어보지 않았지만, 부모님이 당시에 대해 이야기를 하시는 걸 들어보면 당시에 군인들보다 시위대가 더 심했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사진 출처: 네이버 블로그>


아무튼  7여단은 투입 2시간 만에 시위대를 진압하고 본래의 주둔지인 전남대/조선대로 복귀한다.


짧은 시간에 시위대를 해산시키긴 했지만, 7여단의 부상자도 많아서(공수부대는 방석복이 없어서 돌에 맞아 다친 부상자가 엄청 났다고함 전해진다.) 증원을 요청하게 되고 다음날인 19일엔 서울에서 마찬가지로  휴교령을 집행중이던 11여단이 광주로 내려온다.

  

19일 11여단 역시 방석복 없이 진압을 하다보니 많은 부상자가 발생하게 된다. 


처음 작전 방식은 공수부대 10여명과 향도격인 경찰 몇명이 한 조를 이루어 교차로를 지키면서 시위대가 집결하는걸 막는 방식으로 진행 되었는데, 순식간에 시위대 수백명이 수십명의 계엄군을 둘러싸버리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그로 인해 공수부대는 중대에서 지역대 단위로 집결해서 행동해야 했고 나중에 대대단위, 여단단위까지 뭉쳐있지 않으면 시위대에게 순식간에 박살나는 상황까지 악화되었다.


이에 더해 차량을 이용한 가미가제 공격이 시작되면서 공수부대는 완전히 수세적인 입장으로 전환하게 되는데 돌진해오는 버스를 피하느라 이리뛰고 저리뛰고 도망다니느라 난리도 아니었다고 한다.


<사진 출처: 네이버 블로그>


조갑제의 기록에서는 돈을 받고 가미가제 공격을 했다는 증언도 찾아 볼 수 있다.

 

결국 가미가제 버스가 사고를 치는데 20일 투입된 3여단이 작전중이던 광주역에서 가미가제 버스에 의해서 4명의 경찰관과 수명의 공수부대원이 다치고 압사당하는 사태가 벌어지게 된다. 


이 광주역 압사사건이 매우 결정적인 사건인데 이 때문에 최초의 발포가 이루어지게 되고,  공수부대를 광주에서 철수시키라는 명령이 내려온다.


첫째,

계속되는 광주 시민군의 가미가제버스의 공격에 사상자까지 나오면서 계엄군은 방어사격을 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광주영상에서 볼 수 있는 총상의 흔적으로 벌집이 된 버스들이 바로 승객없이  운전사 혼자 계엄군한테 돌진해 경찰관과 군인들을 부상시키고 압사까지 시켰던 가미가제버스다. 


둘째,

당시 지휘부는 광주역에서 계엄군 사상자가 나오는걸 보고 공수부대 투입만으로는 더이상 사태진정이 안되는걸 파악하고 20일 자정을 기해 광주에서 공수부대를 모두 철수시키라는 명령과 함께  광주로 20사단을 보내 국면을 전환하고자 한다.


그래서 20일 자정을 기해  공수부대는 주둔지인 전남대/조선대로 집결해서 광주철수준비에 들어간다. 이때 7여단 11여단 일부대대는 서울에서 내려오는 20사단에게 도청을 인계하기 위해 도청 앞으로 집결한다.


3. 5.21일 상황


5.20일은 하루 종일 내린 비로 인해 5.20일 자정에 도청 앞으로 집결한 7연단11여단 병력들은 매우 지치고 피곤한 상황이었다.


그래도 21일 정오쯤에 20사단이 광주도청에 도착하게 되면 이제 광주에서 철수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이런 정황을 보면 21일 도청 앞에 있던 공수부대원들은 고의로 사태를 악화시킬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고 보여진다. 조금만 있으면 철수고 시민군들과 부딪혀봤자. 다치거나 심하면 사망에 이를 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굳이 악화 시킬 필요는 없지 않을까?


어떻게 보면 심리적으로는 좀 루즈해진 상태일수도 있는데 삼면이 시민군 수천명에게 포위된 상태라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던 거고...


살짝 루즈해진 상태의 공수부대와는 다르게 시민군 진영은 매우 긴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21일 새벽에 광주세무서 무기고를 털어서 칼빈과 실탄으로 총 무장을 한다. 계엄령이 선포되면서 광주시내 경찰/예비군 무기고의 모든 무기를 광주 외곽으로 이송했는데 유일하게 남아있던게 광주세무서였다고 한다. (사전에 위기를 직감하고 무기를 숨긴 쪽이나 그런데도 남아있던 무기를 찾아내 탈취에 성공한 쪽이나 둘다 정보력이 정말 대단하다.)


<사진 출처: 네이버 블로그>


그리고 여기서  문제의 600명이 등장하게 된다. 광주로 내려오는 20사단 차량 제대를 공격해서 군용차량과 M16소총을 탈취하고 연이어 아시아 자동차를 공격해서 장갑차와 군용트럭으로 기동력을 갖춘 후 광주외곽의 예비군무기고를 털어 무장을 하게 된다.


<방위 산업체 아시아 자동차에서 탈취한 k-900장갑차에 탄 광주시민군, 사진출처 : 지만원의 시스템클럽>


5.18 측에선 시민군이 무장을 하게된 동기를  5.21 정오의 계엄군 집단발포라고 이야기 하는데 이 주장속에는 심각한 오류가 있다.


계엄군이 도청 앞에서 발포 한건 21일 정오 경인데, 발포의 직접적인 원인은 600명이 아시아 자동차에서 탈취한 장갑차로 계엄군을 공격해서 죽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시아 자동차에서 탈취한 트럭은 도청 앞 발포가 일어나기도 전에 이미 아시아자동차 공장에서 곧바로 광주외곽 예비군 무기고를 털기 위해 출발한다.


즉, 도청앞 발포사건과 시민군의 무장과는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오히려 시민군 측이 매우 치밀하고 정교한 군사작전을 수행한 행적들만 여러 곳에 남아 있는데, 지만원의 북괴군 투입설의 배경이 되는것이 바로 이러한 부분이다. 


이토록 치밀한 군사작전을 수행한 이 600명에 대해서 지만원은 '저건 민간인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고 보고 북괴군이 관여되어 있다고 해석한건데 5.18측 자료에선 서울에서 내려온 연대생(?) 600명이라고 설명한 것이 전부라서 더욱 의구심을 품을 수 밖에 없다. 


그럼 도대체 그 600명의 정체가 도대체 뭐냐?


지만원한테 북괴군 투입설을 거짓말이라고 몰아 부치기만 할게 아니고 정말 떳떳하다면 저 600명의 정체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해명할 책임이 있지 않을까 싶다.


5.21 정오 발포 이 후

앞서 말한 대로 도청 앞 공수부대는 20사단한테 도청을 인계하고 철수하기로 되어 있던건데 장갑차 공격에 공수부대원이 죽어나가고 이후 이어지는 카미가재공격을 막기위한 대응사격을 시작하면서 도청 앞은 난장판이 되어 버린다.


더욱 놀라운건 시민군도 비슷한 시간대에 무장을 완료해서  건물옥상에서 계엄군을 향해 사격을 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는 도청 앞 발포가 이루어지기 전에 이미 무장이 진행되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건물 옥상에 위치한 시민군을 향해 계엄군이 헬기 사격을 했다는 이슈가 있는데,  97년 검찰 수사 결과 목격작 UH1H의 붉은색 포지션라이트가 깜박이는걸 사격 불빛으로 오인한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아래 저 헬기UH1H가 옆건물/전일빌딩에 발포를 했다고 알려진 건데 저 헬기는 무장이 달려있지 않다. 목격자들이 사격했다고 지목한 헬기도 그동안은 UH1H 였는데 사격명령이 내려졌다는 헬기는 AH1J 500MD . 그런데, 이 두개 기종은 전일빌딩 인근에서 목격된 적이 없다고 한다. 이거 뭔가 앞 뒤가 안맞지 않음?


<헬기 UH1H. 사진 출처: 중앙일보 기사>


도청 앞 계엄군은 옥상 시민군의 사격을 뚫고 전남대/조선대로 후퇴했고 곧이어 광주 외곽으로 철수한다. 이때 계엄군측에도 다수의 실종자 및 사상자가 나온다.


4. 5.21~27 광주봉쇄 기간


광주에서 철수한 공수부대와 20사단은 광주 외곽을 봉쇄한다. 이걸 계엄군의 만행이라 보게 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시민군의 세력 확장을 위한 광주 밖으로의 진출 시도 과정에서 많은 전투가 벌어진다.


<사진 출처: 중앙일보>


여기에 광주교도소도 주요 격전지 중 하나이다.

광주교도소 공격의 명분이 없다 보니 교도소를 공격하려던 게 아니고 그냥 지나가려던 건데 계엄군이 공격을 했다는 식으로 자기들만의 논리를 펼치기도 한다. 자기들이 생각해도 시민군의 교도소 공격은 변명하기 궁색하다는 게 아닌가 싶다.


비슷한 사례로 여순 반란 사건이 있는데, 패턴이 똑같다. 당시 반란군은 여수를 장악하는데 만족하지 않고 인근 지역을 공격해 해방구를 넓혀간다. 가는데마다 살육이 벌어진다. (5.18 때 여자들의 가슴을 칼로 도려냈다는 루머가 여순 반란 사건 때는 실제로 반란군에 의해 벌어졌던 일이다.)


광주를 조기에 봉쇄하지 않았다면 여순 반란 때와 같은 일이 벌어지게 되고 민간의 피해도 더욱 확대되었을지 모르는 일이다.


봉쇄 기간 중 시민 군 내부에서 온건파와 강경파 간의 내분이 있었고 강경파가 주도권을 잡으면서 광주 외곽 진출 시도를 거듭할수록 시민 군의 세력은 점점 약화되었다고 한다.



5. 광주탈환


계엄군은 27일을 시민 군의 공세 종말점으로 보고  탈환작전을 시작한다. 시민 군은 대부분 와해된 상태였고, 공수부대 특공 조에 의해서 시내 주요 목표를 기습, 탈취하는 것으로 상황은 종료된다.


김일성이 대한민국의 공수부대를 존나 무서워했다고 하는데 당시 공수부대의 진압작전 상황을 보고받고 나서는 비웃었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 북한에서는 광주보다 더한 폭동이 여러 건 발생했는데, 그때마다 수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이는 공수부대가 애초에 시위 진압을 목적으로 투입이 된 거지 광주 시민들을 학살하러 투입된 게 아니란 반증이 아닐까 싶다. 5.18에 대해 당시 공수부대 출신들은 이렇게 자조한다.


"시민들에겐 공포 김일성에겐 웃음거리가 되었다"


김일성은 5.18 때 남침하지 않은 걸 존나 후회했다고 전해진다. 만약 5.18이 성공했다면 그 마무리는 김일성이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나저나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이고 훌륭한 유공자라고 하는데 그 명단 공개를 왜 꺼려하는건지 모르겠다. 5.18 유공자는 훌륭한 유공자라 명단 공개를 하지 않는 거라고 주장하는건, 다른 국가 유공자 분들은 훌륭하지 않은 일을 하고 국가유공자에 지정된건가? 


3줄요약.

1. 이걸 어떻게 3줄로 요약하지?
2. 좌파들이 싫어하는 우파 시점에서 보는 5.18임
3. 좌파는 끝까지 안봤지? 맨 앞에 말했잖아 좌파는 괜히 보고나서 속 터지지 말고 나가라고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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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중도입니다 2019.05.13 16:28

    다른건 다 그렇다고쳐도 읽다가 아무리 우파관점이라도 팩트는 맞아야한다 생각합니다. 무기고 탈취보다 계엄군의 발사가 먼저였습니다. 그건 탈취된 경찰 상황일지와 군대의 발포시점 상황일지에 기록되어있으니 사실이겠지요, 군대 갔다오셨다면 상황일지가 어떻게 기록되지는 아실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라니 피해자 입장에선 총으로 위협하는 상대에 대한 방어권일수밖에 없겠지요 그리고 아무리 과격시위라해도 국민세금으로 운용되고 국민안전을 위해 존재하는 국민이 발포한다는게 말이 되는지요? 과격시위가 불법이고 문제지만 그 이전에 시위는 계엄하에도 헌법이 보장하는 행위인데 그걸 강제로 해산하는것 자체가 불법이니 과격하게 막은거지요, 지금도 과격하게 시위는 하지만 물대포 등 막을수 있는 수단은 있고, 유럽, 미국 등 전세계 어디에도 헌법이 보장하는 시위를 총으로 막는 나라는 없습니다. 중국, 러시아, 북한과 같은 공산주의 국가만이 하는 행동이지요, 그런데 과격하다고 시민에게 발포한다? 있을 수 없는 행동이지요, 광주시민들이 저 과격한 시위대에 치안이 불안해서 죽겠다했다면 그나마 모를까, 시민들조차 진압군을 두려워하고 시위대를 도와주는 시위가 국민안전을 위한 진압이었나요?

    • Favicon of https://87male.com BlogIcon 87MALE 2019.05.13 16:57 신고

      뭐가 어떻게 됐든 국민끼리 서로 발포를 한건 양쪽 모두의 잘못이라고 봅니다.

      그럼 봅시다. 시위대의 과격한 시위였다는건 "중도입니다"님도 인정하신 부분이니 이야기가 편하겠네요.

      본문에서 말했고 "중도"님이 말씀하셨듯 시위대의 과격한 시위는 도를 지나쳤습니다.

      당시 시위진압에 나선 계엄군들도 군인이기 이전에 대한민국의 국민이 아닌가요?

      그럼 군인은 시위대가 뚜드려패든 화염병을 던지든 제자리에 목석처럼 가만히 서서 시위를 해산하지 않고 서있어야 하는건가요?

    • Favicon of https://87male.com BlogIcon 87MALE 2019.05.13 17:02 신고

      그리고 좀 많이 아시는거 같아서 여쭤봅니다.

      1. 왜 참가자 명단을 공개하지 못하죠?
      2. 왜 유공자 수가 해가 거듭될수록 늘어날까요? 인터넷 돌아다니다 보면 88년생도 있다던데 1980년에 일어난 일에 1988년생이 유공자?ㅋㅋㅋㅋ
      3. 이해찬은 유공자 명단에 왜 들어가나요?
      4. 당시 대통령은 최규하인데 왜 전두환 아웃을 외치죠?
      5. 왜 진상규명 하자고 하면 적폐취급? 세월호처럼 이것도 오랜시간 거듭 진상을 파헤쳐보면 안되나?
      6. 앞으로 똑같이 무기고 털어서 완전 무장하고 군인들 상대로 총 쏴제끼면서 온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모든 행위 또한 민주화 운동 맞죠?

      이 여섯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확실히 해주신다면 제 블로그의 5.18에 관한 "합리적 의심"성 글을 모두 삭제하겠습니다.

  2. 미쳤어 2019.05.13 18:16

    중도 라는분 나는 이글 다 읽지 않았어요 나는 그리고 여자 남자들 군대 다녀온 사람은 다 안다고 왜냐구 시민이 무슨수로 무기고 있는곳을 알며 시민이 무슨수로 군부대 무기를 탈취하냐고 못한다고 지금 군대 들어간 아이들보고 무기탈취 하라고 하면 못한다고 이게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내용이라고 그때 당시 광주에 있는 군부대에 근무한 사람이 이야가 다 하더구만 살아있는 증인들이 광주사람이 아니고 북한애들이 했다고 하는데 너는 러찌하여 아니라고 떠드나

  3. 중도입니다 2019.05.13 18:43

    말씀드렸다시피 아무리 과격시위라해도 국민에게 총쏠수는 없지요, 요즘 프랑스에서 과격시위대가 엄청난 시위를 하지만 고무총이외엔 무력진압을 안하죠, 무력진압은 공산주의 국가들만의 특징입니다. 그리고 유공자명단은 보수가 반대해서 공개못하는게 아니라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못보는겁니다. 법개정을 해야만 가능한데 국회가 서로 싸우면서 개정을 안하니 못보는거지요, 이해찬건은 저두 모르겠내요, 그리고 왜 전두환 아웃이냐고요? 당시 신군부세력의 정치군대화에 반대했는게 당시 시위세력입니다. 군인이 정치하는것에 반대했음에도 정보기관 장악, 국무회의 주제하는 등 정치화하는것을 반대한것입니다. 이는 당시 일본의 마이니치신문에도 직설적으로 한국의 실권자가 최규하가 아닌 전두환이란 기사까지 나왔을 실정이니까요, 그리고 진상규명이라하면 합리적의심을 가진 사람이 나와서해야지 아직까지 지만원의 횡설수설같우 북한군 개입설같은것만 주장하는 사람이 보수측 의원으로 들어오니 진행할수 없는것이지요, 진상규명도 안하지는게 아니었자나요, 조사할 사람의 의식이 그러하면 진행못하는게 당연한거 아닌가요, 세월호특조도 보수측 인사가 분명 조사에 비협조적이었던건 사실이자나요, 마지막 질문은 제가 반대로 여쭤볼께요, 내 가족이 친지가 친구가 이웃이 시위에 나왔다는 이유로 총에 맞아 죽었다면 님은 어떻하시겠나요? 과격시위가 있던게 사실이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은 일반 시민까지 무차별적 사격이 있었다는건 과거사에서 밝혀졌나요, 시위참가자에 무차별 폭행과 사격, 이게 내 사람들이라면 가만히 있을까요? 시민군이란 이름으로 방어를하고 방어를 위해선 총을 들수밖에 없지않을까요?
    근데 이해찬은 잘모르고 싫어해서 답변못드리겠내요
    제 짧은 답변입니다

    • Favicon of https://87male.com BlogIcon 87MALE 2019.05.13 18:52 신고

      그놈의 니가족타령 ㅋㅋㅋㅋㅋ

      그럼 왜 자꾸 유공자의 수는 늘어날까요? 그리고 개인정보법때문에 공개를 못한다고 하는데

      그럼 6.25참전용사분들은 왜 공개하죠? 님 말씀대로라면 6.25 참전용사 공개도 개인정보법 위반 아닌가요?

      아니 그리고 그렇게 위대한 일을 하신 분들인데 공개해서 더 대우받고 그러면 좋은거 아닌가요?

      그리고 니가족타령해서 저도 여쭙는데 님 가족이 당시 시위를 진압하다가 시위대한테 뚜드려 맞아도

      민주화 운동이라는 이름하에 일어난 일이니 이해하셔야죠 그쵸?

      그냥 서로 관점이 다르니 마무리 짓고 서로 생각대로 살아갑시다.

      한가지 생각만 해야하는 공산국가도 아니고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는거죠. 꼭 한가지 시선으로 봐야하나요?

      지적은 감사한데 강요는 삼가하겠습니다.

      잘가세요

  4. 미쳤어 2019.05.13 22:25

    중도 라는분 가족에게 총질이요 그럼 그 인간들은 쏴도대고 무기를 탈취했는데 너 같음 내가 죽게 생겼는데 너는 가만 있냐 웃기고 자빠지는 엉뚱한 소리 하지 마세요 녜 무슨 성인군지라도 되는줄 ㅋㅋㅋㅋ

  5. 양쪽다탈출 2019.05.29 13:22

    제 정치성향이 중도보수인대요. 중간에 있는 날짜별 글들은 제가 그시절에 있지도 않았고 다들 해석이나 자료들이 다르니깐 넘어가더라도. 마지막 글은 개빡치는대요? 저것만보면 우파들은 죄다 살인마놈들이네 라는 생각이 절로듬요.

    • Favicon of https://87male.com BlogIcon 87MALE 2019.05.29 13:25 신고

      좌파들은 꼭 지가 중도라고 하고 따지고 보면 보수쪽에 가깝다고 하더라

    • 양쪽다탈출 2019.05.29 13:29

      ㄴㄴ 문통수 개 ♬♩♪♬이라고 생각함요 진짜 개♬♩♩♬♩♩임 문통수 자택방향으로 오줌도 갈겨줄수있음요. 그런대 저건 아닌것 같음요.

    • Favicon of https://87male.com BlogIcon 87MALE 2019.05.29 13:31 신고

      마지막 뭘보고 빡쳤다는거임? 518 성공했으면 김일성이 쳐들어왔을지도 모르고
      시민군에겐 공포 북한에겐 웃음거리

      이 부분에 빡친거임? 마지막에 빡친 포인트를 모르겠음

    • 양쪽다탈출 2019.05.29 13:40

      아니, 그러니깐 제가 말했잖아요. 저것만보면 <- 이라고요. 마지막에 요약에서 비웃는듯한 어조로 말하는것만 보면 개빡친다구요. 중간내용을 안볼경우엔 그 말듣고 글쓴분의 글을 그냥 살인마 옹호네 라고 생각할수있다는 그런뜻이었는대요. 제가 빡친상태인게 아니고 만약 그렇게 들렸다면 그냥 제가 글을 더럽게 못쓴겁니다.ㅠ

    • Favicon of https://87male.com BlogIcon 87MALE 2019.05.29 13:42 신고

      그렇다면 성공 좌빨새끼들은 골려먹어야 꿀잼임 어차피 좌파들은 와서 보지도 않고 부들대는 놈들임

    • 양쪽다탈출 2019.05.29 13:51

      아무튼, 잘보고 갑니다!

    • Favicon of https://87male.com BlogIcon 87MALE 2019.05.29 13:52 신고

      넵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담에 수정하는게 좋겠네요

  6. 우파지만 2019.06.05 18:13

    저 우파입니다. 문재앙을 극도로 싫어하죠. 국가 유공자 이런건 지금 일어나는 일이니 일단 제껴두고 그당시 상황과정황만을 봤을때는 정부 잘못이 맞습니다. 그것을 사과하고 인정하지 않으면 제대로된 우파가 될수 없어요.일본놈들이 잘못 저질러놓고 사과 안하는것과 같은겁니다. 무조건 우파라고 감쌀게 아니라 그당시 정부의 잘못으로 피해본 사람들이 있는건 사실이니 잘못은 인정하고 고쳐가면서 우파도 업그레이드 해야 한다고 봅니다.

    • Favicon of https://87male.com BlogIcon 87MALE 2019.06.05 23:59 신고

      정부의 잘못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민들이 죽은게 안타깝긴 하지만 그때 목숨을 잃은건 시민들뿐만 아니라 군인이나 경찰도 있는게 사실입니다.

      근데 왜 시위했던 사람들은 영웅대접받고 시위 진압을 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을까요.

      같은 국민이라 생각하는데...

      518유공자분들도 당시 군인 경찰들에게 용서를 빌고 서로 그러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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