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생 수컷의 인생저장소

다뉴브강의 역사.



다뉴브 강은 독일어로 도나우 강이라고 한다.



다뉴브 강은 유럽에서 두번째로 긴 강이다.


유럽에서 가장 긴 강은 볼가강(Volga River).


총 길이 2850km. 독일 남부 산지에서 발원한 다뉴브 강은 오스트리아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등을 거쳐 흑해로 흘러 들어간다. 강을 따라 과거 동양의 오리엔트 문화가 중부 유럽으로 전파되었고, 민족 이동의 통로가 되기도 했다.


풍부한 수량을 제공해주는 다뉴브강 덕분에 이 강이 지나가는 지역들은 유럽의 손꼽히는 곡창지대들이다.



그러나 이렇게 살기 좋은 여건에 비해 도시문명은 뒤늦게 발달한 편이다.


그리스와 로마인들이 검은 숲이라 부르는 울창한 삼림지대가 문명의 교류를 가로막았기 때문이다.로마제국은 북상 정책을 펼치면서 영토를 확장해나갔지만 다뉴브강 유역의 야만인들을 로마화 시키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결국 다뉴브강을 경계로 하여 더 이상의 영토 확장을 중단했다. 


그래도 다뉴브강 지역 야만족은 훨씬 북쪽의 라인강 지역 야만족들에 비하면 덜 난폭한 편이었다.



라인강 쪽의 야만족들은 토이트부르크 숲 전투를 통해 한니발 이래 가장 많은 로마군을 학살하는 기록을 세웠다. 패배도 충격이었지만 게르만족은 로마군 포로들을 인신공양 의식에 바쳤다. 이것도 로마에서는 엄청난 쇼크였다.



다뉴브 강 하면 빼놓을 수 없는게 있는데 다들 이미 잘 알고 있는 스파르타쿠스다. 스파르타쿠스의 출신지로 알려진 트라키아가 바로 다뉴브강 유역의 불가리아 지역이다.



로마제국에서 네로가 암살당하고, 한동안 내전이 이어지며 황제가 수시로 교체되는 혼란이 계속된다.


이 혼란을 평정하고 로마 황제에 즉위한 인물이 바로 "돈에서는 악취가 나지 않는다"라는 명언으로 유명한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이다. 베스파시아누스는 당시 시리아 전선의 병사들의 지지를 받고 있었고 비텔리우스는 라인강과 갈리아 쪽 병사들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다뉴브 강 경계선을 지키던 로마군단이 베스파시아누스를 지지하면서 전세는 베스파시아누스로 기울었다.


이러한 역사가 있기 때문인지 다뉴브 강을 지키는 병력은 실제로 치룬 전쟁은 많지 않은데도 묘하게 로마의 최정예 부대 대접을 받는다. 당시 로마군의 최정예는 라인강 병력일텐데도. 아마 중앙에 등장할 기회가 별로 없다보니 병력을 잘 간수하다가 결정적일 때 등장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베스파시아누스, 회계사 출신 황제


라인강 쪽의 야만족들(독일인들의 조상들)이 로마사회로 들어가 결국 로마를 무너뜨리게 되는데

다뉴브강 쪽의 야만족들은 그들의 문화를 지켰다.

이때의 차이가 지금 서유럽의 리더격인 독일과 동유럽을 갈라놓고 있는지도 모른다.


난민 반대를 공공연히 외치는 헝가리의 빌보드


한번 개발되자 다뉴브강은 그 비옥함 때문에 많은 야만족들을 불러들였다.


그 중에서도 훈족의 아틸라는 야만족들에게 공포를 심어준 야만족이었다. 훈족(the Huns)은 다뉴브강에서 정착하여 그들의 나라를 세우는데, 이것이 지금의 헝가리이다.


Hungary는 라틴어 '헝가리아'에서 비롯된 말이고 '훈족의 나라'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헝가리는 동유럽에서는 보기 드물게 단일민족 국가이다.


동전에 새겨진 아틸라의 모습. 야만족들 중에서 유일하게 금이나 보석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함.


다뉴브강은 그 비옥함과 동유럽을 가로지르는 수로를 제공한다는 사실 때문에 끊임없는 세력 다툼의 현장이 되었다.


다뉴브 강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조의 젖줄이었다.

프랑스 혁명 당시, 합스부르크 왕조를 비롯한 유렵의 각 왕국들은 프랑스를 조지기 위해 동맹을 결성한다. 이것을 제1차 대불동맹이라 부른다.(마리 앙트와네트부터가 합스부르크 출신)


하지만 프랑스는 계속되는 외세의 침략을 이겨냈고, 그뿐만 아니라 서서히 세력을 해외로 확장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이탈리아에서, 그리고 이집트를 집적대더니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등을 차례로 개박살낸다.


그 엄청난 변화의 중심에 있는 사람이 바로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라는 명언으로 유명한 코르시카 출신의 장교 나폴레옹이다.



프랑스의 힘이 강해질 때마다 유럽 국가들은 프랑스에 맞서는 동맹을 맺었는데 나폴레옹이라는 전쟁천재 앞에 번번히 개박살이 났다.


그리고 러시아와 신성로마제국이 중심이 된 제4차 대불동맹이 나폴레옹에게 패배하면서 프랑스를 육지 전투에서 막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오스트리아만은 끊임없이 나폴레옹의 통수를 칠 기회만을 노리고 있었고 기어이 영국과 제5차 대불동맹을 맺고 프랑스에 맞서 전쟁을 일으켰다.


나폴레옹은 직접 군대를 이끌고 오스트리아 본토를 공격하기 위해 다뉴브 강으로 진격했다. 


나폴레옹은 다뉴브 강 유역이 농사에는 적합하지만 진격에는 장애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농사에 적합한 토양은 진흙뻘이었고 병사들의 진격에 큰 장애물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다뉴브 강을 직접 시찰하던 나폴레옹은 진짜 문제는 바로 다뉴브강의 물살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다뉴브 강은 물살이 매우 빠르다. 도강하는 일이 제일 큰 난관이었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군을 과소평가하여 그냥 도강을 시도하게 되는데,이게 참극을 불렀다.


오스트리아군은 이미 매복하고 있었고 도강 중인 프랑스군에게 총공격을 퍼부었다. 이 과정에서 나폴레옹의 옛 친구이자 프랑스에서 가장 유능한 야전사령관이던 육군원수 장 란(Jean Lannes)이 부상을 입었고 결국 부상이 악화되어 전사한다.


나폴레옹은 간신히 병력을 수습하여 반격에 성공했지만 이미 너무나 큰 손실을 입은 상태였다. 3만명 이상의 병력을 잃었고 무엇보다도 유능한 고참병들이 대거 전사했다.


나폴레옹의 다뉴브 강의 악몽을 "아스페른 에슬링 전투"라 부른다.


란 원수의 장례식에서 애통해하는 나폴레옹


1944년 크리스마스 이브.


다뉴브 강은 또 한번 대량의 시체들을 목격하게 된다.


서쪽으로 진격하던 소련군이 다뉴브 강에서 나치 독일과 격돌했기 때문이다. 당시 헝가리를 점령 중이던 나치군은 부다페스트를 비롯한 다뉴브 강가에 방어선을 설치하고 소련군의 도강을 막으려 했고 소련군은 헝가리를 점령하기 위해 그대로 전면전을 개시했다.


이것을 부다페스트 포위전이라 부른다.


끔찍한 살륙전은 무려 50일동안 계속 되었다. 크리스마스나 새해에는 전투를 쉬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부다페스트에서는 그딴 거 없었다. 전쟁터에서 죽지 않으면 포로가 되어 죽는 길 밖에 없는 살육전만이 있었다. 소련군이 식량 보급로를 끊었기 때문에 독일군과 헝가리인들은 극심한 식량난에 시달렸다.


당시 소련군의 사령관이 명장 로디온 말리노프스키였다.



말리노프스키는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살아남은 인물이었다. 스탈린그라드에서 독일군은 포위전에서 시간을 너무 끄는 바람에 거꾸로 포위당해 전멸하고 말았다.


말리노프스키는 "부다페스트가 우리들의 스탈린그라드가 되어선 안된다"고 말하고 전투를 최대한 서둘렀다. 그는 저격수들을 부다페스트 곳곳에 배치하고 독일군 지역에서 누군가가 나타나면 군인이든 민간인이든 지체없이 사살하는 극도의 압박을 가했다. 결국 50일째, 한계에 달안 독일군은 부다페스트를 탈출했고 헝가리는 이제 소련의 점령지가 되었다.


이 전술은 소련을 통해 시리아에 그대로 전해졌다. 시리아 독재자 알 아사드부터가 소련에 유학한 공군 장교 출신이고 지금도 시리아군의 장성들은 러시아에서 교육받기 때문이다.


시리아내전 당시, 알아사드 정부군이 반군에게 점령된 도시를 압박할 때 말리노프스키와 똑같은 작전을 썼다.


알레포의 반군 지역을 감시하는 시리아 스나이퍼들. 간식 가져다놓고 모니터링하는 것이 쏴죽일 대상이라니 섬뜩하다.


말리노프스키는 다뉴브 강을 따라 북상하면서 슬로바키아도 '해방'시켰다. 즉, 슬로바키아도 소련의 지배 하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다뉴브 강은 물살이 강하기 때문에 시체들은 물에 둥둥 뜨는 게 아니라 그냥 하류로 흘러내려갔다.


다행히도 '아름답고 푸른' 다뉴브 강은 그 이후 두번 다시는 대량 살육장면을 목격하지 않았다.


물론 이번 유람선 사고가 있긴 하지만 일반 사고라고 볼 수 있으니 살육이라고 보기는 조금 힘든 부분이 있다. 


마지막으로 영화 Gloomy Sunday의 배경이 바로 부다페스트이고 거기 나오는 강이 다뉴브 강이다.



이번에 다뉴브강에서 사고가 있었는데, 하루 빨리 시신이라도 찾아냈으면 좋겠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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