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생 아재의 놀이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이명박 전 대통령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해 평가를 하는데에 있어서 경제성장률은 빠질 수가 없다. 이명박을 싫어하는 세력에서는 다른 대통령들에 비해 가장 적은 상승률을 보였다면서 욕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적은 상승률이라는건 정확한 통계와 수치로 표현되어 있으니 그것 자체로는 그들의 주장을 틀렸다고는 이야기 할 수 없다. 

 

근데 상대적이란게 있다. 

 

세계적으로는 평균 10%대의 상승률을 보이는데 6%의 상승률을 보인 지도자가 잘 한 것일까?

 

아니면 

 

세계적으로 (-)%의 상승률을 보이는 와중에 1%를 상승률을 보인 지도자가 잘 한 것일까? 

 

각자의 생각이 다르니 분쟁의 소지가 될 만한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하고 그럼 세계적 공황을 불러왔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이명박 전 대통령과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故 노무현 전대통령의 임기 종료가 1년여 앞으로 다가온 2007년 3월 13일, 이명박 서울시장은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한다.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은 청계천 복원 사업, 서울 시내 버스 제도의 개편 및 환승 제도 도입으로 인해 엄청난 지지율을 확보한 상태였다.

 

그리고 이 날, 이명박 서울시장은 '대한민국 747 비전'이라는 경제 공약을 내놓았다.

  

규제, 투자 감소, 고용 불안, 소비 위축으로 이어지고 있는 악순환 구조를 선순환 구조로 전환시키며 이를 통해

 

'10년 안에 7% 성장,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 7대 경제강국(G7)' 의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자신있게 주장했다.

 

한반도 대운하에 이어 이러한 경제 관련 대형 공약을 내세우면서 이명박 서울시장은 '경제 대통령' 이라는 이미지를 확실하게 굳혀 나갔다.

 

 

이 후 이명박은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선거의 여인' 이라 불리던 박근혜를 아슬아슬하게 제치고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된다.

 

사실 이 시기, 참여정부는 좌우 모두로부터 비판과 규탄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한나라당 경선 승리는 곧 대선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명박 대통령 후보는 선거에서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를 압도적 표차로 제치고 대통령에 당선된다. 여담이지만 내 첫 대선이었다. 내가 찍은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니 정말 신기했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가 출범했다. 이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지 7개월 정도가 흐른 시점에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진다.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 제 2의 대공황 등 어마어마한 수식어를 달고 몰려온 이 태풍은 한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 경제를 강타했다.

 

 

어마어마한 경제적 타격이 될 것으로 예상했으나, 예상과는 달리 한국은 OECD 가맹국 중에서 유일하게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지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의 선방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예상치 못한 복병으로 인해 이명박 정부의 747 공약은 실현되기 어렵게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세계의 평탄한 경제 성장률을 한 순간에 급락시킨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무엇이며 왜 일어난 것인가?

  

본론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서브프라임이란 미국 주택 담보 대출(모기지론)의 신용 등급이다. 

프라임 > 알트-A > 서브프라임 순이다.

 

모든 대출이 그러하듯이, 신용등급이 낮을 수록 대출 이자율이 높다. 대출금을 갚지 못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2000년대 반, 9ㆍ11 테러와 이라크 전쟁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침공 등으로 인해 미국 내 경기가 크게 침체되었다.

 

이에 부시 행정부는 경기부양책으로 금리(이자)를 큰 폭으로 낮추었다. 이로 인해 주택 담보 대출 금리 역시도 크게 낮춰졌고,

 

자연스럽게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을 이용하는 사람이 급증하였다. 이자가 낮아졌기 때문에 저소득층의 부담이 덜해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2004년, 저금리 정책이 종료되면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의 이자는 예전 수준으로 급등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저소득층의 부담은 저금리 정책을 시행할 때에 비해 엄청난 수준으로 늘어나게 되었고, 결국 갚지 못하는 이들이 나타다기 시작했다.

 

서브프라임 등급의 많은 사람들이 돈을 갚지 못하자, 돈을 받지 못한 모기지론 은행들이 줄줄이 파산하기 시작했다.

 

 

결국 미국 2위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회사인 뉴샌추리 파이낸셜이 파산 신청을 하는 어마어마한 사태로 비화되었다.

 

이어 몇달 뒤, 10위권의 아메리칸 모기지 인베스트먼트(AHM) 사가 법원에 파산 보호를 신청했는데 이 회사는 알트-A 전문 업체였다.

 

이 여파는 은행과 증권회사 등 금융계 전체로 확대되어 세계 3위 은행이었던 HSBC가 107억 달러를 회수 불능하는 사태에 빠졌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리먼브라더스 홀딩스가 6000억 달러에 이르는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고 파산 신청을 했다.

 

이 회사는 종합 금융회사인데, 본사를 뉴욕에 두고 도쿄와 런던 그리고 우리나라의 서울에도 지사를 두었던 대형 회사였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FRB와 재무부는 리먼브라더스의 구제 금융에 대해서 거부했다.

 

이유는

 

"기업의 경영 부실에 따른 손실을 나라의 세금을 이용해 막아주면 도덕적 해이를 확산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바로 다음 날, 리먼브라더스의 구제 금융을 거부를 한 것과는 달리 AIG에는 850억 달러 규모의 구제금융을 제공했다.

 

AIG는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전세계 130여개국에 지사를 두고있는 세계 4대 기업 중 하나인데,

 

이 AIG가 무너질 경우 말 그대로 '제 2의 대공황' 을 불러올 가능성이 컸기 때문에 미국은 어쩔 수 없이 구제금융을 제공해야만 했다.

 

 

이러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두고 FRB 의장 벤 버냉키는 

 

'손실이 최대 천억 달러로 추산되며 미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

 

이라고 예상했으나, 

 

버냉키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전세계로 확산되어 대부분의 나라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마무리

1. 2000년대 초, 경기가 침체되자 미국 정부는 주택 담보 대출의 금리를 낮춰 부동산 경기를 띄워보려 했다.

 

2. 이에 저소득층(서브프라임)의 주택 담보 대출이 크게 증가하였는데, 2004년 낮춘 금리가 제자리를 찾았다.

 

3. 이로 인해 저소득층들의 부담이 크게 증가하여 갚지 못하는 일이 속출했고, 돈을 받지 못한 은행들이 줄도산했다.

이것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인 것이다. 당시 G20 평균 성장률은 -2% 대였으며 대한민국은 0.4% 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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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bubleprice.net BlogIcon 버블프라이스 2019.03.14 07:47 신고

    아, 저는 정치쪽에는 장님이라..
    서브프라임 모기지 에 대해 몰랐던 내용을 알고 갑니다^^;;

  2. Favicon of https://meloyou.com BlogIcon 멜로요우 2019.03.14 09:17 신고

    이명박대통령때는 확실히 경제성장률이 상승했는데 지금은 조금씩 내려가는 거같아 안타깝긴합니다.ㅠ